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깜짝 발탁되어 교토퍼플상가를 거쳐 히딩크의 아이들로 2002년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psv아인투호벤에 전격적으로 입단하였다. 이후 유럽챔피언스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전성기를 지낸 이후 QPR과 psv아인투호벤을 거쳐 유럽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축구행정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박지성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명지대학교에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박지성은 우연한 기회에 올림픽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어 시드니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다.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올림픽 발탁을 거쳐 각급 국가대표를 거치면서 교토퍼플상가와 정식적으로 계약하며 최연소 해외진출을 하게 되었다
히딩크에 눈에 띄어 설기현-안정환-박지성으로 이어지는 쓰리톱에 한축의 주전을 맡아 대회직전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의 동점골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대회직전 장기합숙을 통해 조직력과 체력을 완벽히 갖춘 대표팀에서 조별예선 마지막경기 결승골을 터트리면서 4강진출을 견인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2002년 대회를 마친 후 교토퍼플상가에서 천황대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을 선물하며 히딩크에게 영입되어 유럽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첫 유럽무대는 녹록치 않았고 초반에는 저조한 실력을 보여주며 엄청난 비난을 받아 본인 자신에게도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히딩크감독의 배려속에서 원정경기에만 주로 출전하며 점점 적응해 나갔고 이후 AC밀란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경기에서 카푸-스탐-네스타로 이어지는 밀란 제너레이션라인을 뚫고 골을 기록하여 이 활약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전격적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박지성은 당시만해도 아시아선수는 유니폼팔이라는 오해를 없애고 풀타임으로 활약하며 무난히 적응해 나갔고 지금은 세계적 선수가 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기량이 만개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가져오고 더불어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도 순항해 나갔다. 특히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경기에서 스콜스와 더불어 엄청난 활약을 선보여 최고평점을 기록하며 결승전 진출에 큰 공을 세우게 되우게 되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로 아쉽게도 출전명단 제외가 되었으나 이후 몇년이 지난후 다시한번 결승전에 올라 선발출장하게 되지만 바르셀로나의 완벽한 중앙장악과 티키타카전술에 맨유의 중원을 완벽히 박살나며 3:1대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황혼기
박지성은 이후 몇년간 맨체스터유나이티에서 활약하지만 마지막 커리어 즈음이 무릎부상이 점점 심해지고 연속해서 결장하게 되자 박지성은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고 QPR의 대대적 투자속에 주장으로서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반대로 QPR의 경기력은 강등권을 헤매게 되었고 별다른 활약을 못한채 QPR이 강등되면서 psv이적한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다.
박지성은 지금의 한국선수들이 유럽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만들어 준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선수는 유니폼팔이라는 선입견을 없애고 당당히 유럽무대 최정상 팀에서 다년간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이다. 사실 박지성은 개인의 기술이 뛰어나기보다 전술적인 가치로서 감독에서 선택받는 선수였다. 엄청난 활동량과 맨투맨 능력으로 그 당시 세계최고 스타였던 피를로를 지워버렸고 2010년 이후 게겐프레싱이 각광을 받으면서 다시한번 박지성을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축구해설가를 거쳐 축구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는 박지성을 다시한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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